'민규'라는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태권도에 한 번 미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들 없을 때 나 혼자 체육관 가서 연습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운동 경험이 있어서 다들 빨리 배우는데, 나는 격투기 종목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도저히 안되겠더라. 또한 감독님이 일단 촬영 시작하면 별 말씀을 안 하셨다. 자유롭게 동작을 할 수 있었던 게 더 좋았다.
그나마 다행인 게 맨땅에 헤딩했기 때문이다. 부담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 대사에, 그 극적 구성에 내가 부담까지 갖고 있었다면, 아휴~ 감독님이 부담감을 털어버리게 했다. 감독님 연기 보고 따라했다. 그리고 전문가 못지 않은 시청자 반응을 가슴에 새겨 조금씩 조금씩 연기에 반영했다. 강국을 보내면서 시원섭섭하지만 아쉬움보다는 얻은 게 많다. 연기적인 부분이나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알게 된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팬들이 많은 사랑을 보내줬다. 인생의 목표는 내 이름 앞에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이다. 난 연기만 생각하면 된다. 멜로든 뭐든, 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안다. 준비가 안돼 있으면 하라는 것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강국을 연기한 후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부담감을 갖고 있었는데 '내 이름은 김삼순'을 마친 지금은 부담이 더 커진 것 같다. 이제는 사람들이 강국 이미지가 아닌 현진헌, 삼식이로 봐주니 좋기는 하지만 다음 작품을 하기 전까지는 또 부담감 속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안 해본 역할은 다 해보고 싶다. 영화 '돌려차기'에서는 태권소년, '아일랜드'에서는 보디가드,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는 레스토랑 사장으로 각각 출연했는데 다음에 또 다시 레스토랑 사장 역을 맡더라도 현진헌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다. 영화 '프리미얼 피어'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이중인격자는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섣불리 도전하고 싶지 않은 캐릭터다. 하지만 나이를 더 먹어 경력이 쌓이면 꼭 한번 연기하고 싶다.
지금까지 연기했던 인물들 모두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끌어내고 깎아내서 만든 캐릭터다. 이제부터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급하게 변하고 싶지는 않다. 갑자기 전혀 다른 역할로 뛰어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연습하고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변하고 싶다. 물론 사람은 변한다. 나도 변한다. 하지만 느리게, 느리게, 조금 느리게 가고 싶다.
처음 시놉시스와 대본을 보고 내가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에서 이를 들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만약 잘되면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고 욕심도 생겼다. 이 작품은 내게는 숙제 같은 작품이다. 못 이뤄냈을 때는 내가 가진 그릇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에 잠깐 후회하겠지만 더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잘 봐준다면 연기에 대한 용기가 생기고 또 다른 캐릭터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
정신병에 관련된 영화나 책을 많이 접했으며, 촬영 들어가기 전날에는 정신병원을 찾아가 환자분들을 만났고 그분들을 통해서 느꼈던 부분을 연기를 통해 시도했다. 갑자기 캐릭터를 바꾸고 싶어서 이 영화를 택한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한번쯤은 시도를 해보고 싶었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도 아직은 젊기 때문에 괜찮다. 촬영 들어가서 끝나는 순간까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지방 촬영을 하는 동안 제목처럼 ‘나는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답은 아직 못 찾았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지오 캐릭터에 다가갈 때는 연기를 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가장 현실적인 남자,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사람. 그래서 지오의 직업이나 나이보다 지오를 가장 실제 사람에 가깝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지오가 국장님이나 부장님을, 윤영 선배하고 작가님을, 준영이나 수경이를 만날 때 같은 상황에서 지오의 모습을 다 각자 찢어 놨다. 그래서 지오가 부모님을 만나는 설정이면 내가 부모님들한테 어리광부리는 걸 실제로 보여주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많은 걸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도 했지만, 나는 단면적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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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고 싶어서 얻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이 작품도 해보고 싶고, 저 작품도 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다. 단순히 따지면 캐릭터일 수도 있다. 삼식이 캐릭터를 하고 나서,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드라마를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거다. 상황이나 스타일이 비슷한 작품보다는 그래도 이것보다는 조금 다른 거, 대신 많이 변하지 않는 걸 하고 싶다. 다만 나이 들어 그 전에 했던 캐릭터를 다시 해보면 그건 그대로의 재미가 또 있을 거란 생각은 든다. 표현방식이나 뉘앙스가 다 달라질 테니까. MBC <아일랜드>의 경호원 역할은 40살쯤 돼서 다시 해보고 싶다.
드라마들은 방송과 동시에 바삐 찍으면서 만들기 때문에 중간중간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바로 반영이 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사전제작이라 시간을 충분히 갖고 촬영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늘 크고, 돌아서면 내 연기에 대해 후회하게 되는 것 같다. 시청률이 낮다는 것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아닌 것 같다. 시청률의 행복은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겪어봤다. 그 '효과'가 얼마 가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느꼈기 때문에 시청률에는 별로 연연하지 않는다. 난 다 성공하리라 생각하고 선택한 작품이다. 그런데 결과가 안 좋았을 뿐이다. 대중과의 소통은 늘 생각하는 것이다.
(입대전 마지막 작품이니 만큼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는 질문에) 남다른 각오라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은 있는 것 같다. 약간 떨어져 있을 생각을 하다보니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작품에서 캐릭터는 한명이지만 연기해야 하는 것은 두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참 열심히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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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부쩍는 것 같다는 말에) 나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씩 배워간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씩, 하나씩 표현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만추'를 찍으면서 다른 시스템을 접한 것도 굉장히 도움이 됐다. 당장은 어떤 게 발전이 되고 늘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음, 다다음에 지금 배운게 하나둘씩 나올 것 같다. 표현할 수 있는 가지수가 늘어난 것 같고 짧은 시간에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책이 굉장히 얇았고, 지문 등이 정확하게 써 있지 않았다. 물음표 같은 시나리오였고, 여백이 많았다. 그래서 영화를 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훈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놓지 않는 인물이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표현하는 게 힘들었다. 눈빛이나 표정, 언어나 문화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다. 눈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눈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말로도 100% 감정 전달이 어려운데 영어로 표현한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고 숙제였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냥 죽자사자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또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된 한국 사람에게 맞는 영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계속 고민했다.
감정이 많이 표현되는 연기나 감추고 있는 연기나 힘든 건 똑같은 것 같다. 내면에 감정을 감춘 연기 또한 자제된 표현 안에서 표현을 해내야 하는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잘 해냈을 경우 감정 폭이 큰 연기보다 배우로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철저히 준비해야 했고 감정상태도 최대한 유지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방법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던 영화였다.
기존에 나왔던 정조 관련 드라마나 영화를 본 게 없었다. 비교 대상이 없어서 정조를 만들어 가는데 편안히 집중할 수 있었다. 일단 서적을 많이 봤다. 마침 규장각 의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기에 챙겨 봤는데 워낙 절제력이 강하셨던 분이라고 하더라. 절제라는 건 사실 연기할 때 힘들다. 80을 감추고 20을 표현했을 때, 관객에게 20으로 보일지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로 보일지 알 수 없다. 배우야 감춘 80까지도 알아채 주길 바라지만. 그래도 ‘절제’를 중심으로 대사 처리법 등을 만들어 나갔다. 본의 아니게 제약된 부분도 있다. 수염이나 상투는 하관의 표정이나 이마 쪽에 지어지는 주름 등을 가린다. 화면상에 보이게 될 부분을 활용하려 애쓰며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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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바라는 군주의 모습이 ‘역린’ 속 정조가 아닐까 한다. 주변 사람 하나하나, 국민 하나하나를 살피는 사람이자 왕이다. 영화의 주제의식이 응집돼 있다고 할 수 있는 ‘중용’의 말,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해 나가면 세상은 바뀐다’는 것은 비단 정치뿐 아니라 모든 상황에 적응되는 것 같다. 쉬운 말 같지만 어려운 말이고, 시국이랑 맞물려 있다. 나도 힘들고 스트레스받을 때 (중용의 가르침을) 생각하면 그 순간에는 힘이 생긴다. 영화를 보고 안 보고를 떠나 이 문구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진과 주원을 비교해서 비슷한 인물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재벌2세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다는 설정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인물이다. 주원이 같은 경우는 가지고 있고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알면서 행동하는 인물이라면, 서진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타인에게 벽을 쌓고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쩌면 가장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 가장 외롭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정반대의 인물인 서진과 로빈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떤 말투와 표정과 외적인 모습에 변화를 가져야 될지를 많이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