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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제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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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원수

[편집]

궁예는 번쩍 눈을 떠서 돌아 보았다. 어딘지 모르는 방이다. 사 간 넓이나 되는 크고 넓은 방인데 사벽에는 그림과 수와 글씨를 붙였다.

<이게 어디란 말인가?>

하고 궁예는 눈을 껌벅껌벅하고 생각하여 보았다. 왼편 다리가 쑤신다.

궁예는 양길과의 싸움에 자기가 말에서 떨어지던 생각은 나나 그 밖에는 아무 생각도 아니 난다.

궁예는 번쩍 고개를 들어 자기의 베개맡에 웬 젊은 처녀가 앉은 것을 보았으나, 머리가 아찔하고 핑핑 내어 둘려서 베개 위에 머리를 놓았다.

궁예의 눈에는 그 젊은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어찌된 셈인가 ————내가 죽었나.>

하고 생각하여 보았다 . 다리가 쑤신다. 다시 고개를 들어 머리맡에 앉은 여자를 보려 하였으나 고개가 들어지지를 아니하였다.

머리맡에서 여자의 옷이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물 잡수세요?』

하고 묻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먼 데서 오는 소리와 같았다.

물이란 말에 궁예는 갑작 목ㅇ 마른 듯하기도 하고, 또 그의 예쁜 말에 대답을 아니하면 아니 될 것도 같아서,

『응.』

하고 얕은 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눈은 떠지지 아니하였다.

『자요.』

하고 숟가락이 입에 닿았다. 궁예는 입을 벌렸다. 그 처녀는 숟가락을 기울여 물을 흘려 넣었다. 물맛이 달고 속이 트이는 듯하였다.

처녀는 궁예가 입을 벌리는 대로 물을 떠 먹였다. 여남은 숟가락이나 받아 먹은 뒤에 궁예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처녀는 숟가락에 떴던 물을 도로 그릇에 붓고 숟가락을 그릇 위에 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자기의 얼굴을 궁예의 얼굴 가까이 갖다 대고,

『미움 드려요?』

하고 묻는다.

궁예는 깊이 생각도 아니해 보고 고개를 도리 도리 흔들었다.

처녀는 이윽히 궁예의 얼굴울 들여다보더니 궁예의 이마에 더부룩히 내려와 덮인 머리카락을 손으로 끌어 올리며,

『정신이 드셔요?』

하고 묻는다.

궁예는 「대체 여기는 어디며 이렇게 내 곁에 앉아 구원해 주는 처녀는 누구인고?」하고 의심하면서 정신이 들었다는 표로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아이……사흘만에.』

하고 처녀는 기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사흘 만에」라는 말에 궁예는 또 의심이 났다. 그러면 자기가 말에서 떨어져서 정신을 잃었다가 사흘만에 피어난 셈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에 그날 자기가 말에서 떨어져서 아픈 다리를 끌고 혼자 싸우던 생각과 그러다가 다시 거꾸러진 생각과 무엇이 머리를 딱 때리던 생각이 난다.

그러면 어찌하여 양질이가 자기의 목을 자르지 아니하였을까? 대관절 이 처녀는 어떤 처녀일까? 궁예는 양길의 딸에 절세 미인이 있다 말을 들은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면 이것이 양길의 딸인가 ———— 그럴 수가 있을까?

냉수를 먹은 것이 효험이 나서 궁예는 점점 정신이 쇄락하여짐을 깨달았다.

마침내 궁예는 다시 눈을 떠서 처녀가 자기의 얼굴을 들여다봄을 볼 때에 자기의 눈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이 부끄러워서 다시 감아 버렸다. 자기의 애꾸눈으로 그 달 같고 꽃 같은 처녀의 얼굴울 보는 것이 마땅치 못한 것 같았다. 그러할 때에 어머니의 일과 어머니를 모해하여 죽게 한 원수가 다시 생각되어 「응」하고 얼굴울 찡그렸다.

<이 원수를!>

하고 궁예는 전신에 힘을 주고, 「응」소리를 내며 이를 갈았다.

처녀는 궁예가 얼굴을 찡기고 이를 가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두리로 물러 앉았다. 정신 못 차리고 누웠을 때에는 그렇게도 정답던 얼굴이 한번 찡길 때에는 지옥의 사자 모양이 되는 것을 보고 처녀는 떨었다. 또 궁예가 애꾸란 말은 들은 지도 오래지마는 당장에 한 눈만 번쩍 뜨는 것을 볼 때에는 정이 떨어졌다. 처녀는 궁예의 머리 맡에서 이만큼 물러 앉아서 한숨을 지었다.

그 한숨 소리를 궁예가 들었다. 그 한숨 소리가 들릴 때에 궁예는 전신이 녹아 버린 듯이 하염 없음을 깨달았다. 자기의 몸은 보이지 않는 줄로 꽁꽁 결박을 지어 그끝을 저 처녀가 들고 앉아서 마마대로 당기었다 늦추었다 하는 듯하였다. 다리가 쑤시고 머리가 가끔 핑핑 내어 두르는 곁에 그 처녀가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이 다 잊어 버려지고 몸이 편안히 공중에 둥둥 뜨는 것 같았다. 궁예는 일생에 처음 보는 기쁨을 깨닫고 무심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눈은 감은 채로 팔을 내밀어 그 처녀더러 가까이 오라는 뜻을 보였다.

처녀는 궁예의 볕에 그을고 힘줄 덖은 팔과 한번 쥐면 바윗돌이라도 으스러질 듯한 손을 보았다. 그리고 그 힘있는 궁예의 손과 팔은 자기를 가벼운 새털 모양으로 고이 고이 들고 헌거롭게 극락 세계 상상층 도솔천(〇率天)까지 데리고 갈 듯하였다. 처녀는 자기의 조그마한 하얀 손을 궁예의 손바닥에 가볍게 올려 놓았다. 궁예의 손가락은 벌벌 떨리며 줄어 들어 그 하얗고 조그마한 손을 꼭 쥐고 잡아 끌었다. 처녀는 두 뺨에서 불길이 나도록 얼굴을 붉히고 무르팍 걸음으로 궁예의 곁으로 끌렸다. 궁예의 손은 불덩어리와 같이 더워 조그마한 처녀의 손은 금시에 녹어 버릴 듯 싶고 손이 녹는 것을 따라 가냘픈 몸도 힘있는 뜨거운 궁예의 팔뚝 속으로 스르르 녹아 들어 갈 것 같았다.

궁예는 다시 눈을 부신 듯이 그 처녀를 보며,

『아가씨는 누구요?』

하고 물었다.

『내 이름은 난영(蘭英)아기 ————아버지는 북원 장군 양길 대감.』

하고 처녀는 고개를 숙였다. 난영은 이상하게 머리카락 끝까지 맥이 펄떡펄떡 뚜미을 깨달았다.

양길의 딸이란 말에 궁예는 난영의 손목을 놓았다. 양길이란 말을 들으면 패전(敗戰)의 수치와 분노가 한꺼번에 복받쳐 오르는 까닭이다, 그러나 난영의 손을 놓면 자기는 공중에서 매달렸던 줄을 놓치고 허공으로 둥실둥실 떨어지는 듯하였다.

난영은 궁예의 얼굴에 괴로운 빛이 떠도는 것을 보고 자기도 맘이 괴로왔다.

『아버지는 원수기로 나까지 원수는 아닐 것을…….』

하고 궁예도 중얼거렸다.

<원수는 원수 풀면 그만이 어니와, 사랑은 사랑 풀어도 안 풀리는 사랑.>

하고 난영이 한숨을 진다.

아버지 양길이 죽주(댓골)로 군사를 거느리고 간 뒤에 난연은 아버지를 근심하여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고 애를 쓰던 끝에 하룻밤에는 옷도 입은 채로 잠깐 누워 잠이 들었더니 난영이 평소에 믿고 귀의(歸依)하던 미륵님이 꿈에 나타나 이러한 분부를 하였다.

『내일은 눈 하나를 다친 미리(龍)가 이리로 올 테니 이는 너의 일생의 배필이라 반드시 네 몸이 귀히 될 것이니 정성으로 섬겨라.』

나이 열 여덟이 되어 아침 이슬 떨치는 꽃송이 같은 난영은 생각지 아니하려 하여도 남편을 생각하던 차에 이 꿈을 얻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날이 맟도록 이 꿈이 맞기를 기다렸다.

그날 밤이 깊고 달이 기울어진 때에 북소리 요란하게 들리며 승전하였다는 기별을 가진 군사들이 의기 양양하게 북원으로 몰려 들어 왔다. 장군 영문에는 수없는 촛불과 횃불이 켜지고, 승전한 소식을 들은 군사들은 터져라 하고 북을 치고 쇠북을 울리고 주라와 소라와 피리를 불고 뛰놀았다.

이때에 난영은 그 어머니와 함께 발을 드리우고 바라보고 있을 제 막군사들이 어떤 사람 하나를 맞둘러 메어 담아지고 들어 와 횃불 곁에 놓고,

『기헌을 죽이고 궁예를 잡았네 비호 같은 궁예도 내 철퇴에 잡혔네.』

하고 창 자루를 땅바닥을 두드리며 춤을 춘다.

애꾸장군 「 궁예」란 말을 들은 지 오랜 난영은 얼른 어젯밤 꿈을 생각하고,

『글쎄 내 꿈이 안 맞을 리가 있나.』

하고 어머니가 붙드는 것을 듣지 아니하고 발을 들고 군사들이 모여 뛰는 마당으로 뛰어 내려 갔다.

군사들은 장군의 딸아기가 오는 것을 보고, 「쉬! 쉬!」하고 물러서서 길을 열었다. 양길이 군사 중에 어는 누구가 난영을 사모하지 아니할까.

이름 없는 군졸들은 달 속에 계숫가지라 감히 껶을 생각은 못한다 하더라도 닷새에 한번 열흘에 한번 난영의 아름다운 모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고 하늘에서 떨어진 저 꽃송이가 장차 누구의 품에 들어 갈꼬?

젊은 장수들은 저마다 고운 꿈을 꾸고 있었다.

난영은 가벼운 깁소매를 날리며 사뿐사뿐 군사들의 앞을 걸어 지나 궁예의 곁으로 와서 고개를 숙여 궁예의 얼굴울 보았다. 그믈그믈하는 횃불빛에 얼굴이 분명히 보이지 아니하므로,

『불, 촛불!』

하고 난영은 누구를 부르는지 모르게 손을 넌짓 들었다. 군사들은 저머다 촛불울 얻어 가지고 나도 나도 하고 난영의 곁으로 와서 촛불을 내어 밀었다. 난영은 그중에서 하나를 받아 가지고 궁예의 얼굴울 비쳤다. 비록 볕에 그을어 검붉은 빛이 날지언정 웅장한 골격과 기상이 난영의 맘을 어지럽게 하였다. 난영은 손을 궁예의 코 앞에 대어 숨길이 있는 것을 본 뒤에,

『물——— 물———』

하고 또 한손을 넌짓 들었다. 군사들은 촛불을 내어 던지고 달아나 물그릇을 들고 왔다. 난영은 곁에 섰는 군사들에게 들었던 촛불을 주고 그중에서 물 그릇 하나를 받아 옥 같은 손가락으로 궁예의 입술을 벌리고 물을 흘려 넣었다. 궁예는 눈도 못 뜨고 정신도 못 차리거니와 목마른 듯이 물을 삼켰다. 난영은 부드러운 한삼 소매로 궁예의 입과 뺨을 씻고 일어나며,

『수족의 결박을 끄르고 별당(別堂)으로 모시오.』

하였다. 난영의 말에 곁에 섰던 군사들이 궁예의 결박을 끄르려 할 때에 한 군사가 내달으며, 어이 아가씨 큰일 『 , 납니다. 만일 수족을 끌렀다가 이놈이 정신만 드는 날이면 우리 북원이 쑥밭이 될 것이요. 그리하옵기로 장군마마께옵소서도 꼭꼭 묶어서 가두어 두되 쥐샐 틈 없이 엄중히 파수하라 하시었사옵니다.』

하고 두 팔을 벌려 궁예의 곁으로 모여 드는 군사를 물리친다. 난영은 일변 놀라며 일변 맘에 흡족하여 빙그레 웃으며,

『못난 소리 마오. 아무리 궁예가 날래기로 혼자서 무슨 일을 하리.』

한즉 그 군사는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내아 두르며,

『혼자도 유만 부동이옵지 어제 싸움에도 궁예 혼자서 우리 군사를 오백명은 죽였사옵고 입맞추 장군 대감께서 활로 이놈이 말을 맞추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아니하였더면 소인네도 하나 목숨 부지 못하고 이놈이 손에 모가지가 날아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안 그런가?』

하고 동무들을 바라본다.

『그러하옵니다. 이놈은 나는 놈이니 꼭꼭 동여서 저옥 속에 쇠사슬로 잡아 메어 두는 것이 지당하오이다.』

하고 다른 군사들도 첫 군사의 말을 돕느다.

『겁도 많의. 후사는 내가 담당할 터이니 어서 내 말대로 하오.』

이리하여 궁예의 결박을 끄르고 별당으로 옮긴 후에 난영이 몸소 밤을 새워 병구완을 한 것이다.

어머니의 걱정도 들었으나 그래도 굽히지 아니하고 난영은 자기의 몸종 월향과 함께 번걸아 가며 깨어 이틀 밤 이틀 낮을 구완을 하던 끝에 지금 궁예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것이다. 궁예가 비록 자기가 양길의 딸이란 말을 듣고 잡았던 손을 놓아 버렸으나 난영은 반드시 궁예를 제 것을 만들리라고 결심하였다.

궁예는 이윽히 말없이 누웠더니,

『내가 어찌하여 여기 왔소?』

하고 다시 말을 시작한다.

난영은 전후 시말을 대강 말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궁예를 옥에 가두라던 말은 아니하고 잘 병을 구완하여 속히 낫게 하라고 분부하엿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그러한 끝에,

『나는 기어이 장군을 살려 내리고 맹세를 하였소. 내가 이렇게 정성으로 비는 말을 미륵님이 안 들으실 리가 없다고 믿었소.』

한다. 미륵이란 말에 궁예는 놀랐다. 그러나 궁예는 놀랐다. 그러나 궁예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

한 달이 지나서 궁예는 병석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좀 일어나 볼까?』

하고 궁예가 몸을 움지럭거리는 것을 보고 난영은 월향을 불러 들여서 궁예를 불러 들여서 궁예를 붙들어 일으켰다. 이리하기를 며칠하는 동안에 궁예는 혼자 일어나 방안에서 거닐게 되고, 또 며칠 후에는 마당에서 거닐게 되었다. 그러나 상한 다리의 아픈 것은 좀처럼 가시지 아니하여 조금씩 살룩살룩 저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궁예는 다리 하나가 병신이 된 것이 분하여 혼자 여러 번 탄식을 하였다.

양길은 가끔 궁예의 병석에 찾아 와서 궁예를 위로하고 궁예를 공경하는 보이며 지금 천하가 어지러워 창생이 도탄에 들었으니 힘을 합하여 각처에 날뛰는 도둑을 진정하고 나라와 백성을 태평하게 하자는 뜻을 말하였다.

궁예도 양길의 정성에 움직이지 아니할 수 없었다. 더구나 양길이가 기헌을 후히 장사하고 기헌의 처첩과 자녀를 데려다가 후히 대접하여 양육하는 것을 볼 때에 양길의 덕을 사모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다만 궁예가 보기에 양길은 너무 지혜가 많아서 겉으로 꾸미는 것이 많고 속으로 믿을성이 적은 것이 흠인 듯하였다.

궁예는 말을 달리게 되고 활과 칼을 쓰게 될이만큼 몸이 추서게 되매 혼자 여러 가지로 싸왔다. 잠시 양길의 밑에 있어서 때를 기다릴까? 그러나 아직 그렇게 이름도 높지 못한 자기로, 겸하여 패군지장으로 이제 별안간에 무슨 큰일을 할 것 같지도 아니할 뿐더러, 양길의 은혜도 저버리기가 어렵고 또 난영의 정도 물리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궁예는 괴로운 중에 하루 이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궁예가 병이 완쾌한 후에는 맘대로 난영을 만날 수도 없고 또 기별을 들을 수도 없었다. 궁예는 겉으로는 난영의 정을 물리치는 듯이 보이면서도 속맘은 온통 난영의 아름다운 자태로 쏠렸다. 삼십년 동안 숨겨 두었던 정의 불길이 한번 난영으로 하여 타기 시작한 뒤로는 궁예의 힘으로도 누를 수가 없었다. 달이 넘도록 난영을 볼 수도 없고 소식도 들을 수 없어서 궁예의 맘은 심히 초조하였다. 말을 달릴 생각도 없고 활을 쏠 생각도 없고 오직 혼자 가만히 앉아서 난영이가 자기 병구완하던 생각을 할 뿐이었다.

이리하여 군사를 조련할 때나 활 쏘기 말 달리기를 할 때나 사냥을 갈 때에도 궁예는 언제나 어깨를 축 쳐뜨리고 기운을 발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군사들은 궁예가 철퇴로 머리를 맞은 뒤에는 옛날 기운이 다 없어졌다고 수군거리고 비웃는 이조차 있었고 양길도 궁예에게 대하여 점점 실망하는 빛이 보이게 되었다.

양길도 처음에는 크게 믿고 궁예만 내 사람이 되면 큰 힘을 얻을 듯이 생각하여 장차는 딸 난영을 궁예에게 주려고까지 생각하였으나 병이 나은 지 오래도록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는 것을 볼 때에 마마에 심히 불만 하여 누구든지 이번 싸움에 공을 이루는 자에게 난영을 줄 뜻을 보이게 되었다.

하루는 궁예가 홀로 방에 앉아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난영의 모양만 생각하고 있을 때에 난영의 시비 월향이가 무슨 보통이가 하나를 들어다가 궁예의 앞에 던지고 간다. 궁예는 곧 문을 열고 월향을 불렀으나 월향은 벌써 간 곳이 없었다.

하릴없이 궁예는 방에 들어 와 그 보퉁이를 끌렀다. 그 속에는 솜옷 한 벌이 있다. 궁예는 반가와 그 옷을 입으려 할 때에 옷 갈피에서 편지 하나가 떨어진다. 궁예는 옷을 입다 말고 그 편지를 떼어 보았다.

『이 옷을 입고 가시기를 바라나이다. 듣사온즉 족하는 본디 중이라 하오니 다시 절로 돌아 가 목탁이나 두드리심이 합당하겠사오며 첩이 족하를 한 영웅으로 잘못 안 것을 부끄러워하나이다.』

하고 편지 끝에는 이름조차 쓰지를 아니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난영이가 자기를 욕보이는 표다.

궁예는 그 편지를 손에 꾸겨 쥐고 몸을 떨었다. 지금까지 몸 속에서 졸고 있던 분기와 힘이 한꺼번에 껴서 나는 듯하여 궁예는 벌떡 일어나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벾에 걸린 활과 칼을 떼어 가지고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산과 들에는 흰 눈이 쌓이고 반쪽 찬 서쪽 하늘에 걸렸다.

『응! 내 행색이 무엇인고? 어머니의 원수도 잊고 창생을 건지자는 큰 뜻도 잊고 일개 아녀자에 연연하여————응! 내 행색이 무엇인고?』

하고 궁예는 자는 말을 끌어 내어 손수 아장을 지었다. 말은 상쾌한 듯이 안개 같은 김을 코로 토하고 전신을 푸르륵 떨었다.

궁예는 손을 들어 말의 목을 만지며,

『가자! 천하를 진정하는 길을 떠나자.』

한즉, 말도 주인의 뜻을 아는 듯이 고개를 번쩍 들고 앞발로 땅을 두어 번 굴렀다.

궁예는 몸을 날려 번쩍 말에 올라 한번 고삐를 당기니 말은 눈 덮인 길을 밟아 북원 동문을 향하고 닫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잊히지 못하는 난영이다. 잊으려 할수록 난영의 모양은 말머리 앞에 번뜻거렸다. 궁예는 잠깐 말을 세우고 뒤를 돌아 보았다. 장군 마을(將軍府)은 다른 백성들의 집보다 뛰어나게 높은데 빨간 등불이 반짝반짝하는 양이 보였다. 궁예는 그 속에 난영이가 잠을 못 이루고 앉았는 양이 보이는 듯하여 애끊는 듯하였으나 궁예는 머리를 흔들어 그런 연약한 새앆을 떼어 버리고 다시 말을 몰았다.

궁예는 동문 지키는 군사를 달래어 문을 열게 하고 동문을 나서서 달을 등을 지고 필마 단기로 동으로 동으로 말을 달렸다.

이때에 치악산(雉岳山) 석남사(石南寺)에는 수백명 중이 모여 낮에는 경을 읽는다 칭하고 밤이면 군사 조련을 하고 있었다. 궁예의 말이 마침 치악산 앞을 지날 때에 어떤 노승 하나가 궁예의 말 앞에 합창하며,

『궁예 장군이 아니시니까?』

하고 절하고 궁예를 인도하여 석남사로 들어 가게 하였다. 석남사에 모여 있던 중들은 궁예라는 말을 듣고 모두 내려 와 절하며 그날부터 궁예의 군사가 되기를 청하였다.

이튿날 아침에야 양길은 궁예가 달아난 줄을 알았다. 양길은 진헌(薽萱)이란 자가 무진주(武珍州)에서 도둑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웅심이 발발하여 자기도 곧 군사를 모아 서울의 동쪽과 한수(漢水) 이북을 손에 넣어 큰 뜻을 필 생각을 하고 이날에 궁예를 부르러 갔던 사자가 궁예는 없고 솜옷 한 벌과 여자의 편지 한 장만 있더라 하여 가져온 것을 보고 양길은 놀랐다. 역시 궁예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 그윽히 큰 뜻을 품은 사람인 줄을 깨달을 때에 자기가 근일에 궁예를 냉대한 것을 후회하였다.

양길은 일변 사람을 놓아 궁예의 간 곳을 수탐하라 하고 곧 안으로 들어가 난영을 불러 궁예의 방에 있던 의복과 편지를 주었다. 양길은 그것이난영의 소위인 줄을 안 까닭이다.

난영은 꼬기꼬기한 편지와 의복을 보고 볼라는 눈으로 아버지를 우러러 보며,

『궁예가 어찌되었어요?』

하고 물었다.

『어디로 달아나 버렸다.』

난영은 그러한 편지는 쓰면서도 궁예가 달아나 버렸단 말에 곤에 들었던 편지를 떨어뜨렸다. 난영은 다만 궁예가 새 기운을 내어 공을 이루기를 바란 갓이요, 이렇게 달안 버리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난영은 아버지가 앞에 있는 것도 잊어 버리고,

『어쩌면 나를 두고 간담.』

하고 눈물을 씻었다.

이때에 한 군사가 들어 와 양길에게 궁예가 어젯밤 깊은 뒤에 필마단기로 동문으로 나가더란 말을 아뢰었다.

양길은 우는 딸을 바리고 곧 마을로 나와 말 잘 타는 군사를 뽑아 동문 밖으로 궁예의 자취를 따르라고 영을 내리고 일변 수십 명 장수를 불러 행군할 차비를 하기를 명하였다.

오천명 군사가 행군 차비를 하노라고 북원 성내는 물끊듯하고 어디서 무슨 큰 변이 났는가 하여 백성들은 눈이 둥글하였다. 수없는 수레는 무거운 짐을 싣고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눈 덮인 가상으로 부주히 왕래하고 수천 군마는 마구에서 끄려 나와 북두를 조르며 기운차게 소리를 지른다.

『이번에는 길에는 서울을 들이친다.』

하고 군졸들은 구석구석이 모여 정들었던 사람들과 함께 술 마시며 장담을 하고, 울고 매어 달리던 아내와 아들 딸을 곧 승전하고 돌아 온다는 말로 위로하며 머뭇거리는 이도 있었다.

궁예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 가는 날이면 큰일이다. 아무리 하여서라도 궁예를 붙들어 오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요, 만일 붙들어 오지를 못하면 죽여라도 버려야 할 것이다. 궁예를 따르는 군사는 쌍쌍이 말을 달려 동문 밖을 내달았다.

궁예가 석남사에 있단 말을 듣고 양길이 몸소 마방 일천과 보병 일천을 거느리고 석남사로 나가 궁예를 위로 한 후에 궁예로 동령도 총관(東嶺道總管)을 삼아 동해 여러 고을을 엄습하게 하고 자기는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영서(嶺西) 여러 고을을 엄습하여 서울에서 같이 마나기로 하였다.

궁예는 처음에 양길이 주는 벼슬과 군사를 굳이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그 호의에 감격하여 허락하고 크게 잔치를 베풀어 모든 군사를 먹이고 일변이백여 명 중으로 하여금 종과 북을 울려 이르는 곳마다 승전하기를 비는 재를 올리게 하였다. 이날에 치악산은 종소리와 북소리와 군사들의 떠드는 소리로 떠나갈 듯하였고 날이 저물매, 양길은 궁예와 작별하고 크게 공을 이루기를 빌며 북원으로 돌아 왔다.

양길이 돌아 간 뒤에 궁예는 모든 군사를 불러 삼백명을 한 대씩 일곱 대에 나누어 대마다 사상(舍上)을 두고 사상 밑에 또 여러 벼슬을 두어 규률을 엄숙하게 하기를 명하고 사처에 돌아 와 앞날에 싸울 계책을 생각하였다.

밤이 깊으니 이천 병마도 잠이 들어 법당 추녀에 달린 풍경 소리만 뎅겅뎅겅하는데 궁예는 손 아래 있는 이천병마와 장쾌한 앞날의 싸움을 생각할 때에 혼자 득의의 웃음을 아니 웃을 수 없었다. 여기서 서울이 사백리 주천(酒泉) 내성(內城) 울오(蔚烏) 어진(御珍)을 폭풍같이 낼 밀어 장기 당당하게 서울로 대군을 들이 몰아 일변 평생 원수를 풀고, 일변 대장부의 공명을 세울 것을 생각하면 잠이 들지를 아니하였다. 궁예는 반쯤 눈을 감소 혼자 고개를 끄떡끄떡하여 취한 듯이 환하게 툭 터진 자기의 앞날을 바라보았다.

이때에 문밖에서,

『총관께 아뢰오, 총관께 아뢰오.』

하는 소리가 들린다.

궁예는 꿈에서 깬 사람 모양으로 영창을 열고 내다보며,

『누구야?』

하였다. 거기는 창 든 군사 하나가 섰다.

『젓사오되 문에서 파수를 보옵는데 어떤 젊은 선비 두 사람이 북원서 왔다 하옵고 총관께 시급히 아뢸 말씀이 있다고 하옵니다.』

『젊은 호반 두사람?』

하고 궁예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래 무슨 일이라더냐?』

『무슨 일은 말하지 아니하옵고 총관께 뵈오면 자연 아신다 하옵니다.』

궁예는,

『이리로 들어 오라 하라.』

하고 군사를 물리고 시원한 찬 바람에 머리를 식히며 고루(鼓樓)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네 그림자가 고루 밑으로서 나와 점점 가까이 궁예의 게하여 와서 고개를 숙여 예를 하고 선다. 가운데는 두 선비가 서고 창 든 군사들이 좌우에 옹위하였다.

『어떤 선비완대, 이 아닌 밤중에 무슨 일로 왔소?』

하고 궁예는 불빛에 비치인 두 선비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으나 수선이 이마와 두 볼을 가리었으니 오직 반짝반짝하는 네 눈이 보일 뿐이다.

『자우를 몰리시오면 사뢰을 말씀이 있읍니다.』

하고 한 선비가 엄연한 음성으로 말한다.

궁예는 두 군사에게 물러가라 하고 명하였다. 두 근사의 그림자가 고루 밑으로 스러질 때에 두 선비는 손을 들어 이마와 뺨을 가린 수건을 벗었다 ——— 그들은 난영과 월향이었다. 궁예는 눈을 의심하고 다시금 보았으나 그들은 분명한 난영과 월향이다.

궁예는 일변 반갑기도 하고 일변 놀랍기도 하여 마루에 뛰어 나와 난영의 손을 끌어 올렸다. 남복을 하니 말쑥한 젊은 선비다.

궁예도 앉고 두 사람도 앉은 뒤에 궁예는 아직도 놀라는 빛을 가지고,

『웬일이요? 어찌하여 왔소?』

하고 물었다.

『어디를 가시든지 따라 가려고 왔소.』

하고 난영은 얼굴을 붉혔다.

궁예는 더욱 놀라며,

『여자의 몸으로 전장에를 어떻게 따라 가오?』

『이렇게 남복하고 따르지요! 이런 난세에 한번 떠나면 어디서 만날 것을 기약하오? 아버지도 내일은 군사를 거느리고 전장으로 나간다 하시니 집에는 누구를 믿고 있소?』

한다.

이튿날 평명에 궁예의 군사는 주천(酒泉)을 향하고 떠났다. 석남사의 쇠북은 은은히 울려서 그칠 줄을 모르고 아침 해는 이천명 군사의 기치와 큰 검을 비치어 오색 빛을 발하였다.

동구 밖 북원 가는 길이 갈리는 곳에서 점점 멀어 가는 궁예를 바라보고 말 위에서 울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그것은 난영과 월향이다.

난영은 마침내 북원에 떨어져 잇기로 하였다. 소매에 매어 달려 우는 난영을 뿌리치기는 궁예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으나 궁예는 큰일을 위하여 애끊는 정을 아니 누를 수가 없었다.

『사졸(士卒)과 감고(甘苦)를 같이할 몸으로 그러할 수 없소. 장차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니 그때를 기다리오.』

하는 궁예의 말에 난영은 더할 말이 없고 오직 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부디 맘을 변치 마오. 승전하시고 너무 위태한 곳에 들어 가지 마오.』

할 뿐이었다.

궁예의 군사는 길다란 구렁이 모양으로 하얀 눈길을 굼틀굼틀 감돌아 간다. 앞머리가 벌써 고개를 넘더니 점점 고개 너머로 스러지어 마침내 마지막 사람이 스러져 버렸다.

『한번 뒤도 안 돌아 보네.』

하고 난영이 눈물을 씻을 때에 월향은,

『뒤를 돌아 보아서 써요?』

하고 난영을 보고 웃으며,

『영웅의 부인 되실 이가 그렇게 눈물을 흘려서 쓰겠소?』

하고 먼저 말머리를 북원으로 향하고 돌린다.

이별은 슬프구나 『 , 영우의 아내도 귀찮으니 이별 없는 아내가 되고 싶다.』

하고 난영은 한번 더 눈을 비비어 궁예의 말이 넘어간 고개를 바라보고 월향과 같이 말머리를 돌린다.

『이별이 섧다고들 그럽디다마는 나는 이별할 사람도 없소.』

하고 월향은 심화가 나는 듯이 채찍을 들어 말을 갈기니 말은 뛰기를 시작한다.

『얘야, 같이 가자.』

하고 난영은 말을 빨리 몰 기운도 없었다.

난연과 월향이 이별이 설은 이야기와 인제 큰 싸움이 났으니 장차 어찌될 것인가를 이야기하면서 말머리를 가지런히 하여 북원 장군 마을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양길은 대군을 거느리고 한물(韓水)을 건너 서쪽으로 떠나 버린 때였다.

난영은 이날부터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그리고 한편으로는 궁예를 그리는 몸이 되어 억지로 잠이 들어도 꿈길에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날마다 기별 가진 군사가 달려 왔으나 날이 갈수록 두 군사가 점점 멀어 갈수록 이틀에 한번 기별이 오게 되고 눈이나 많이 온 날은 사흘에 한번 나흘에 한번도 기별이 오게 되었다. 기별이 온대야 양길에게서나 궁예에게서 나 싸운다는 기별, 이겼다는 기별, 적군을 몇 십명 사로잡았다는 기별 뿐이요, 난영에게 보내는 기별은 없었다.

양길이 북원을 떠난 뒤에 흘골(紇骨)이라는 장수가 북원을 지키고 또 양길의 가족을 보호하기로 되었다.

흘골은 본래 현강왕 때에 서울서 병부 사지(兵部舍知)로 있다가 무슨 죄를 짓고 옥에 갇히었다가 무슨 죄를 짓고 옥에 갇히었다가 옥을 깨뜨리고 도망하여 돌아 다니던 사람으로 양길의 군중에서는 가장 벼슬이 높은 사람이다. 자칭 대아손(大阿飡) 태골(太骨)의 아들이라 하나 자세히 그 내력을 아는 이는 없으되 병법을 잘 알고 또 서울 일을 잘 알므로 양길의 신임을 받아 군사(軍師)라는 벼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천문도 보고 지리도 안다 하며 앞날의 길흉 화복도 알아 본다 하여 제갈량같이 양길에게 존중함을 받았다. 그러나 평소에 말이 많이 많지 아니하고 또 나와 다니기를 싫어하여 군사들 중에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으되 그의 얼굴을 본 이는 많지 아니하였다. 이번 행군에도 양길은 흘골의 말을 깊이 믿어 그 말대로 하기로 하였고 궁예에게도 흘골이 시키는 말을 전하였다.

그러나 궁예는 흘골을 즐겨하지 아니하여 항상 그를 흘겨 보았고 흘골도 궁예가 자기를 즐겨 안하는 줄을 알므로 아무쪼록 속히 궁예를 먼 곳으로 떠내 보내려 하였던 것이다.

궁예의 군사는 숫눈길을 헤치고 산을 넘고 들을 건너 동으로 동으로 나아갔다.

주천 싸움에 (酒泉) 한나절이 못되어 이겨 태수(太守)를 사로잡고 관병(官兵)을 쫓고 옥문을 열어 애매한 죄인들을 놓고 관고(官庫)를 열어 학정으로 토색한 재물을 흩어 유리 개걸하는 백성을 안도케 한 뒤로, 백성들은 궁예를 신장군(神將軍)이라고 일컬어 혹은 술을 빚어 오고 혹은 닭과 돼지를 삶아 오고 혹은 솜 많이 둔 옷을 지어다 바치고 궁예가 말을 타고 길거리로 나올 때면 길가에 남녀 노소가 합창하고 허리를 굽혔다.

이 모양으로 궁예는 군사를 끌고 가는 곳마다 탐관 오리(貪官汚吏)와 관력에 등을 대고 세민(細民)를 토색하는 토호(土豪)들을 혹은 쫓고 혹은 가두고 혹은 죽이고, 그 자리에는 백성들에게 추존을 받는 사람들을 골라 정사를 하게 하였다.

이 소문을 듣고 동방에 있는 각 고을 태수(太守)들은 모두 겁이 나서 부랴부랴 세간을 싸가지고 서울로 도망하려 하였다. 그러나 신장군이 온다는 말에 백성들은 기운을 얻어 일제히 일어나 서울로 길 떠나는 태수들의 앞길을 막고,

『여보, 어리들 가? 가려거든 토색한 물건을 놓고 가오. 흠, 호락 호락히 놓아 보낼 줄 아오?』

하고 빈정거리고 대들었다. 어떤 태수는 세간집도 내버리고, 또 어떤 이는 처자까지도 내어 버리고 목숨 하나만 살려고 개구멍으로 빠져 달아나기도 하고, 어떤 태수는 백성들의 앞에 땅바닥에 꿇어 엎드려 손이 발이 되도록,

『먹은 것은 다 토해 놓을 것이니, 목숨만 살려 주오, 백성님네들.』

하고 빌기도 하고, 또 어떤 대수는 추운 겨울날에 발갛게 옷을 벗기어 눈구멍에 묻히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백성들이 강으로 끌고 나아가 얼음 구멍을 뚫고 두 발을 거꾸로 잡아 그 구멍으로 넣었다 빼었다 하는 일도 당하다가 겨우 어떤 늙은이의 구원을 받아,

『어허허허, 우후후후.』

하고 덜덜 떨면서 누더기 속에 써이어 끌려 가기도 하고 그중에 백성들에게 원망도 많이 받고 또 딱딱거리던 패는 대칼과 대침으로 전신을 씰리어 몸에 있는 피를 다 쏟아 놓고 삶은 닭 모양으로 살이 하얗게 되고 팔다리가 비비 꼬여 나둥그러지기도 하였다.

오 이놈 평생이 『 , ! 네 세상인 줄만 알았더냐? 인제는 견디어 보아.』

하고 백성들은 굵다란 새끼 오라기로 북두를 조르고 손에 몽둥이를 들고,

『이놈! 도둑놈아 나오너라!』

하고 고함을 피며 태수 아문(太守衙門)으로 모여 들었다. 백성들이 한번 이렇게 일어나면 태수의 손 밑에 있던 군사들도 백성들에게 향하였던 창과 칼을 거꾸로 들고,

『옳다, 이놈 아니꼽던 놈들을 없애 버려라!』

하고 태수와 사상(舍上) 같은 높은 벼슬하던 사람들을 향하고 대들었다.

『오늘은 어디 민란(民亂)이 있었다.』

『어저께는 어디 민요가 일었다.』

하고 궁예의 군사가 앞으로 나오는 대로 이러한 소문이 방방 곡곡에 전하였다. 그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백성들은 밥 먹던 숟가락도 다 내어 던지고 문밖으로 뛰어 나와 팔을 뽑내며,

『옳다 되었다. 이놈들을 모조리.』

하고 마을에 고을로 달려들어 갔다.

그러다가 어느 고을에 신장군 궁예 총관의 군사가 가까이 오면 그 고을 두민(頭民)들은 십리 이십리 밖에 마주 나와 허리를 굽히고 궁예에게 예물을 드리고,

『민등(民等)이 태수놈을 쫓았읍니다.』

하고 보고를 하였다.

이 모양으로 궁예는 북원을 떠난 지 일개월이 못되어 주천·내성·울오 등 십여 고을을 항복 받고 이월 초승에는 어진주(御珍州)를 향하게 되었다.

신장군 궁예의 이름은 아동 주졸이라고 모르는 이가 없고 궁예의 군사가 나갈 때에는 밤 마을에 개도 지지 아니하였다.

이때에 서울 인심이 얼마나 흉흉하였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궁예의 군사가 어진주에만 들어 오면 서울의 형세의 위급함도 경각에 달린 것이다.

어진주에서 개머리를 돌아 서울로 온다 하더라도 행군길로 불과 사오일 길이라 이월 보름 안으로는 궁예의 군사가 장안을 돌이치리라고 물론이 낭자하였다.

애초에 주천 태수 아손 용길(阿飡勇吉)이 요행으로 궁예의 손에서 목숨 하나만 받아 가지고 도망하여 서울로 들어 온 것은 지금부터 약 한달만 전섣달 그믐날 밤이었다. 용길은 서울에 들어 오는 대로 곧 왕께 궁예의 난을 아뢰려 하였으나 그날 밥 왕은 대야주에서 온 어떤 미남자를 불러 들여 처음으로 동방 화촉의 즐거움을 맞는 날이므로 상대등이나 시중조차 궐내에 들어 오기를 허치 아니하기 때문에 못하고 오래간만에 집에 들어 가 놀라는 가족들을 만나 보고 이튿날 세뱃 조회에야 비로소 입내함을 얻었다.

오늘은 설명절이라 왕은 곤룡 황료(袞龍黃袍)에 황금 면류관을 쓰시고 피곤한 듯이 용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가드란 두 눈에 조는 듯한 웃음을 띄우고 상대등 시중 이하 만조 백관의 조회를 받으시었다. 벼슬 낮은 벼슬아치들은 용상 바로 앞에 부복하여 여러 가지로 하례하는 말과 성덕을 칭송하는 말씀을 사뢰었다.

『국 태평 민 안락하옵고 사해 창생이 상감마마의 성덕을 찬송하나이다.』

이러한 하례를 받을 때마다 왕은 만족한 듯이 약간 고개를 끄떡거렸다.

주천 태수 용길은 궁예에게 봉변 당하던 일을 생각할 때에 맘이 오마조마 하여 어서 자기의 차례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나 늙은 신하들과 벼슬 높은 신하들의 한가한 덕담이 언제 끝날지 끝이 없는 듯하였다.

풍악은 쉴 새 없이 둥둥 올려 오고 하늘에 높이 뜬 햇빛은 문무 백관 외관과 띠의 장식에 번쩍거리며 이따금 불어 오는 찬 바람은 풍경과 패옥을 울려 딸랑딸랑 소리를 내니 진실로 태평성대한 듯하였다.

용길은 맘이 조급하여 연해, 언 발로 옥계(玉階)의 박석을 울리고 부시럭거렸다. 이러한 판에 궁예가 번쩍 보이면 다들 어찌할 것인고, 자기 모양으로 그만 그 무서운 호령에 헐개가 풀려, 섰던 자리에 펄썩 주저앉으면서,

『그저 살려 줍소사 장군마마, 분부대로 물불에라도 들어 갈 것이니, 살려 만 줍소사.』

할 것이 아닌가. 용길은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이빨과 두 무릎이 떡떡 마주치고 잔등이에 찬 땀이 쭉 흘러 내리는 듯하였다.

『허 못생긴 놈! 네 목숨과 다릿마댕이는 줄 것이니 이 길로 서울로 올라가 왕께 여쭈워라, 삼월 삼질날 제비 들어 올 때에는 나도 들어 갈 터이니, 죽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여쭈어라!』

하고 궁예가 땅에 엎더진 자기의 턱을 발길로 툭 차서 일으켜 놓고, 그 무서운 애꾸로 내려다 보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앞에 궁예가 섰는 것만 같아서 눈을 들어 잠깐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거기 궁예는 없고 자기 모양으로 두 손으로 흙을 받들고 허리를 구부리고 선 사람들뿐이었다. 용길은 궁예의 발길로 치어 들리던 턱주가리를 민틋한 흘 끝으로 한번 쓸어 보았다. 분명히 턱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한번 한숨을 쉬고 곁눈으로 전상을 바라보매, 아직도 한가한 덕담이 너저분하였다. 용길은 마주치는 무릎을 진정하노라고 두 다리를 좀 벌려 디디었다. 마침내 용길의 차례가 돌어 왔다.

용길은 두 손을 읍하고 전에 올라 꿇어 앉아 슬행(膝行)으로 용상 앞에 가 가까이 들어 가 이마를 마루에 세 번 조아리며,

『북원 태수 아손 용길이요.』

하고 직함과 성명을 아뢰렀다. 왕은 오래 조회를 받기도 지리한 듯이, 잠깐 양미간을 찌푸리고 몸을 한번 움직였다. 맘에는 어젯밤 대야주 젊은 호반과 즐기단 생각이 나서 자리에 오래 앉았기가 싫어 손을 들어 일어날 뜻을 보였다. 이 눈치를 보고 용상 좌우에 갈라 섰던 두 시녀가 나와 왕을 부액하여 일으킨다. 시녀라 하지마는 기실은 얼굴 아름다운 남자다. 왕은 아름다운 남자를 골라 여복을 입혀 시녀를 만들어 항상 가까이 모시게 하였다. 왕이 용상에서 내려 서려는 것을 보고 용길은 이마를 한번 더 조아리며,

『상감마마께 아뢰오. 지금 북원 도둑 양길이 강성하와 궁예라는 도둑을 보내어 영동 여러 고을을 엄습하읍는 바 신(臣)은 죽을 힘을 다하여 싸왔사오나 마침내 이기지 못하옵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와 주야 겸행으로 어젯밤 서울에 득달하왔사오며, 궁예의 형세 사뭇 맹렬하와 가는 곳마다 반드시 이 기오니, 예사 좀도둑이 아니오니 급히 막을 도리를 하옵실 바로 아뢰옵니다.』

하였다.

왕은 잠깐 발을 멈추고 용길을 보며,

『양길이란 말은 들었거니와, 궁예는 첨 듣는 이름이로 구나.』

하고 잠깐 근심하는 빛을 보인다, 좌우에는 늘어선 백관들도 놀라는 듯이 귀를 기울인다.

용길은 또 한번 이마를 조아리며,

『그리하올쎄 궁예는 양길보다도 무서운 놈이옵고 활을 쏘매 백발 백중이 오며 눈이 애꾸이옵기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별명을 애꾸장군이라 하옵고, 싸움에 귀신 같다 하와 신장군이라고도 하오며, 삼월 보름 안으로는 서울을 들이친다고 큰소리를 하옵니다.』

『애꾸야?』

하고 왕은 웃고,

『그래 두 눈을 가지고 애꾸한테 항복을 하여?』

하고 용길을 노려 본다.

용길은 등에 냉수를 끼얹히는 듯하였으나 겨우 정신을 모아,

『항복은 아니하였사옵고 싸울 대로 싸왔읍니다. 그러하오나 군사와 백성이 모두 도둑의 편이 되오니, 신 혼자서 어찌하오리까마는 서응ㄹ 버린 죄는 죽어 마땅하오이다.』

하고 용길은 아주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용길도 본래 허랑한 자로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다가 얼굴이 잘난 덕에 왕의 눈에 들어 얼마 동안 고임을 받다가, 다시 왕의 눈 밖에 나서 주천 태수로 보냄이 되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용길은 왕이 옛정을 생각하고 자기에게 대하여 관대한 처지를 할 줄만 믿었더니 천만 의외에 왕은 어성을 높여,

『인신(人臣)의 도리에 도리에 도둑이 오거든 싸와 물리칠 것이요, 만일에 이기지 못하거든 성을 베개 삼아 죽을 것이 마땅하거든, 이제 지키던 고을을 도둑에게 내어 주고 뻔뻔하게 살아 돌아 왔으니 너 같은 것은 목을 베어 박관을 징계하리라. 삼일이 지나거든 종로에 효수를 하도록 주천 태수를 급부에 내려 가두어라.』

하고는 시녀에게 부액을 받아,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나가 버렸다. 미처 조하를 마치기 못하였던 벼슬아치들은 왕의 뒤를 향하여 허리를 굽혔다.

벼락 맞은 듯이 엎더지어 일어날 줄을 모르던 용길은 급부로 끌려 나가고 용길의 말을 백관들은 서로 돌아 보며,

『서에는 진헌(薽萱)이요, 동에는 궁예(弓裔)라.』

하고 한숨을 쉬며 흩어졌다.

용길은 옥에 갇히어 죽을 날을 기다리며,

『내 어이 살았던고. 옛정을 믿었던고. 이럴 줄 알았던들 궁예에게나 붙을 것을……아끼고 아끼던 목숨을 못내 아껴하노라.』

하며 울었다.

주천 태수 양길의 뒤를 이어 거의 날마다 혹은 궁예에게 쫓기고, 혹은 민요에 쫓기고, 혹은 민용에 쫓긴 원들이 서울로 기어 들었다. 더러는 팔을 싸매고, 더러는 다리를 싸매고, 또 더러는 머리를 싸매고, 그중의 어떤 원은 한편 귀를 깎이고 어떤 원은 코가 찌그러지고 이가 부러지고, 이 모양으로 거의 몸이 성한 사람이 없었고, 그중에 몸 성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미리 기미를 알고 일이 나기 잔에 살짝 빠져 온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다 도망을 못하여 궁예의 군사와 백성들의 손에 죽은 사람도 많다고 하며, 여러 고을 아문에는 혹은 원의 귀를 꿰어 매달고, 혹은 머리를 매달고 백성들이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지르며 즐겼다.

도망하여 오는 이마다 궁예를 당할 수 없는 삼월보름 안으로 서울에 올 터이니 기다리라던 말을 전하였으나, 「음란한 여왕아 회계하라」하는 말은 감히 입밖에 내는 이가 없어서 장안 백성들이 전지 문지 다들은 뒤에도 왕의 귀에는 이 말이 들어 가지 아니하였다.

서편에서는 진헌의 군사가, 어제는 어는 고을, 오늘은 어느 고을을 항복 받았다고 하고, 동편에서 또 궁예의 군사가 물밀듯 바람 밀듯 들어 온다는 기별이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서울로 들어 오니 장안 인심은,

『세상이 이제야 뒤집히네.』

하고 물 끓듯하여 피난을 가려 하나 어디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다만 궁예와 진헌과 어느 편에서 먼저 서울을 들이칠 것인가 이것만 이야기하였다.

서울에는 진헌의 군사를 보고 온 사람도 생기고, 궁예의 군사를 구경한 사람도 들어 와 혹은 진헌이가 강하다 하고 혹은 궁예가 더 강하다 하여 각기 저 보고 온 군사를 강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서울 인망은 궁예 편으로 실렸다. 그것은 진헌은 신라 사람이면 보는 대로 막 죽이고 백성의 딸 중에 아름다운 이가 있으면 곧 빼앗아 들이되 궁예는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또 딸을 바치는 자가 있어도 물리친다 하는 고문이 났기 때문이다.

궁예의 군사가 울오(蔚烏)를 깨뜨리고 어진(御診)으로 몰아 온다는 장계가 오르매, 왕은 마침 저녁 수라를 받으시었다가 손에 들었던 숟가락을 내 어 던지고 성화같이 문무 백관을 부르라는 칙교를 내렸다.

그날 밤 등촉이 휘황한 큰 대궐에는 문무 백관이 구름같이 모이고 황겁한 백성들도 사해문 앞에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

왕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미남자 상궁(尙宮)의 부액을 받아 옥좌에 올라 백관의 그궁 사배의 예를 받았다. 바람에 나부끼는 촛불과 그 빛에 비치 이는 근심한 얼굴과 대궐 안은 수심이 차고 궁녀들도 구석구석에 모여 피난할 공론을 하게 되었다.

왕은 수색이 만면하여 좌우를 돌아 보며,

『지금 진헌과 궁예가 강성하여 동서로 침노하되 고을을 지키던 도독과 태수들은 허수아비같이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쥐구멍만 찾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하물며 궁예가 벌써 어진주를 범한다 하니, 사세가 위급한 지라, 경등은 두 도둑을 막을 꾀를 말하라. 밤이 깊고 날이 새더라도 막을 꾀를 얻기 전에는 물러가지 못하리라.』

하는 왕의 말씀에는 수참한 빛이 있었다.

왕의 말씀이 끝날 때에 이경을 아뢰는 종소리가 뗑뗑 궐 안으로 울려 들어 왔다.

모두 잠잠하고 서로 바라보며 누가 먼저 말을 내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먼저 말을 내는 이는 없고 촛불만 속절없이 끔벅끔벅하였다. 사람들은 인제는 서로 바라보기도 그치고 모두 눈을 내려 깔아 제 발뿌리만 보았다. 그중에도 벼슬 높은 이는 왕이 자기의 이름을 부르면 어찌하나 하고 그것만 근심이 되었다.

특별히 일국 병마를 한 손에 맡은 병부령(兵部令) 맹공(孟攻)과 평소에 용맹을 자랑하던 병부 대감(兵部大監)들은 자기네에게 무슨 영이 내리자나 아니할까 하여, 죄지은 어린애 모양으로 맘이 오마조마하였다.

마침내 왕은 참다 못하여 어성을 높여,

『경등은 국록지신이 되어 나라이 위태한 때에 아무 계책도 말하지 못하고 등신 모양으로 앉았는가. 평소에 그 많던 지혜와 용맹은 다 집에 두고 들어 왔는가. 평소에 그렇게 말 잘하던 헛바닥까지도 빼어서 고양이를 먹이고 왔는가. 지금 몸에 가진 것이 얼 빠진 두 눈 밖에 없는가. 금시에 진헌 궁예가 장안으로 들어 오더라도, 다들 고만하고 앉았을 터인가, 그래도 추천 태수 모양으로 도망할 두 다리는 아직도 성하게 가지었는가. 흥! 그 몸집 집들이 아깝고 입은 옷들이 아까와라!』

하고 엎드린 백관을 꾸짖었다.

백관들은 등에는 찬 땀이 흐르고 두 관자놀이가 후끈후끈하거니와, 그래도 없는 지혜와 없는 용맹에 서뿔리 말을 먼저 내는 것보다 꾹 참고 다른 사람이 압을 열기만 서로 기다렸다. 먹을 때는 앞서는 것이 좋지마는 힘드는 일에는 항상 뒤로 매도는 것이 이하다고 다들 아는 까닭이다. 등에 찬땀이 흐르기도 나 혼자만 흐르는 것이 아니니 관복 등에 소금이 도도라도 빨아 입으면 그만 이어니와, 서뿔리 덤비다가 궁예나 진헌의 칸에 목에서 피가 흐르게 되면, 떨어진 목을 다시 주워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저 꾹 참고 실낱만한 목숨줄만 손가락 사이로 빠지지 않도록 꼭 붙들어라. 아 손대인 소노이야 어디를 가면 못하랴. 진헌도 용상에만 앉으면 상감마마요, 궁예도 그러하다 ————서뿔리 방정 맞은 소리를 하였다가 그 말이 궁예나 진헌의 귀에 들어 가면 봉변이니 왕의 말씀과 같이 도망할 두 다리만 단단히 차고 혓바닥을 랑 고양이 먹인 셈만 대자, 하고 사람들은 더욱 입을 꼭 다물었다.

병부령 맹공은 왜 내가 어저께 진작 이 벼슬을 내놓치 아니하였던고, 국고가 말랐으니 왕께서 녹을 타기는 커녕 내 집 곡간에서 양식을 갖다가 왕을 대접해야 할 판이요, 군사라고 활 메어 내세우면 꼬빡꼬빡 조는 늙은 병졸이 아니면, 손가락 다칠까봐 칼집에 손 대기도 무서워 하는 장수들뿐이다. 상감님이 이해궁예나 혜성대왕 능행에 차례로 벌여 세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마는 이것들을 군사라고 끌고, 산전 수전에 호랑이 다 된 궁예나 진헌과 싸운다는 것은 마치 길에다가 발을 드리워서, 스치어 들어 오는 적군을 막으려 함과 같다. 게다가 힘개나 쓰고, 쌈낱이나 하고, 칼이나 활이나 한 재주있는 군사들은 한 놈씩 두 놈씩 찼던 칼과 활만 훔치어 가지고 달아나 버리고 남아 있는 군사라고는 , 궁예라는 궁자만들어도 창을 거꾸로 끌고 달아날 것이다. 이런 것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랴……그저 입 꼭 다물고 죽여 줍시오하고 가만히 있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윗사람이 그러하니 아랫 사람도 그러하다, 나는 아랫 사람이니 윗사람 하는 굿만 보다가 먹을 떡이 있으면 먹고, 맞을 매가 있으면 달아나면 그만이다.

그중에 제일 찬 땀을 많이 흘린 것은 무론 서불한(舒弗邯)이라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이손 준흥(伊飡俊興)이다.

『사람이 잘나서서불한이더냐.

못나신 덕택에서불한 이러라.』

이러한 민요의 웃음거리가 되고 또,

『어화야 슴겁기준네 집 홍 도령, 남의 집 잔치에 동동 걸음이라.』

하는 조롱거리가 되도록 못한 사람이언마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뼈도 없고 가시도 없는 두루뭉수리로 왕의 말이라면 까마귀가 희다고 해도, 「에 그러하오」, 까마귀가 붉다 해도「에 그러하오」하여 왕의 사랑을 받는 처지다. 그러나 두 귀 밑이 허연 것이, 서불한이라는 높은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이, 서불한이라는 높은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이, 쥐구멍으로 들어 가고 싶도록 부끄러워서 이마에 땀을 흘 끝으로 씻으며,

『진작 물러날 것을…….』

하고 사직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준흥은 체면에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을 수만 없어,

『서불한 준흥이 아뢰오.』

하고, 옥좌 앞으로 나가 엎드렸다. 모든 이손(伊飡)·소판(蘇判)·파진 손(波珍飡)·대아손(大阿飡)·일길손(一吉飡)·사손(沙飡)·급벌손(級伐飡)· 대내마(大柰麻)·내마(柰麻)들 이하로 대사(大舍)·길사(吉士)·대오지(大烏智)·소오지(小烏智)·조위(造位)에 이르는 십 칠 관등의 대소 관헌과, 기타 각부 대감 (大監) 경(卿)들도 준흥이 나시는 것을 보고 모두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이, 안심하는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맞을 매를 준흥이가 대신 맞아 주는 셈이다.

서불한 준흥은 왕의 앞에 세 번 이마를 조아리고,

『흉적 진헌·궁예 두 놈이 성주의 은혜를 몰라 보고, 무리한 도둑을 소취하여 동서로 작폐하와, 신금(宸襟)을 불안하시게 하오니, 신등은 황송하와 아뢰올 말씀이 없사오나, 예로부터 아무리 한 성주(聖主)의 어우(御宇)에도 한두 놈 좀도둑은 있는 법이라, 요마 진헌·궁예를 두려워할 것은 업사옵고 또 충성된 문무 제신이 있사오니 반드시 목숨을 버려 사직을 안보할 것이온즉 만사는 병부령 맹공에게 맡기시압고, 이미 밤도 늦삽고 밤바람도 차오니 상감마마께옵서는 침전으로 입어하시옵소사고 아뢰오.』

하고 말이 끝난 뒤에 다시 세 번 머리를 조아린다.

준 흥은 왕이 오늘 밤에도 대야주 미장부(美丈夫)를 침전에 기다리게 한 줄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준 흥의 말에 왕도 침실에서 기다리는 미장부를 생각하고 맘에 흡족하였다.

다른 신하들도 어서 왕더러 들어 가, 주무시라는 준 흥의 말에 만족하였다. 왕만 들어 가시면 자기네도 각각이 밤중에 찬 마루에서 등에 찬 땀을 아니 흘리고 고 따뜻한 어린 첩의 방으로 돌아 갈 수 있을 것을 생각한 까닭이다. 여기서 이렇게 오래 찬 땀을 흘린 대야 감기나 들 것 밖에, 아무 소득이 없을 것을 잘 알고 또 진헌이나 궁예가 장안을 둘이치기로 설마 오늘 내일이랴, 하루 이틀 지나노라면 무슨 묘리도 생기려니, 그 묘리가 안생긴다 하더라도 설마 내야 어떨라고……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준 흥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는 병부령 맹공이다.

만일 왕이 자기를 불러,

『네 궁예를 막으라.』

하고 칙교를 내리시는 날이면 그야말로 봉명이다. 그래서 준 흥이가 어전에서 물러 나오기도 전에 맹공은 그 통통한 몸을 글려 옥좌 앞으로 나아가,

『병부령 이손 맹공이 아뢰오.』

하고 엎드렸다.

사람들은 이 땅달보가 무슨 말씀을 아뢰는고 하고 두 눈으로 맹공의 엎딘 양을 바라보았다. 맹공은 십년 병부령에 진헌의 난이 일어나기까지는 천하 병권을 손에 쥐고 서슬이 푸르렀던 사람으로 재물이 누거만이요, 세력으로는 서불한 준 흥도 어찌하지 못하였다. 군사의 녹은 거의 다 혼자 먹기 때문에,

『땅딸보 땅달보 배통만 커서, 삼만 명 녹미를 다 삼킨다.

네 땅딸보 배통이 왜 자리 큰가, 삼만 명 군사가 들어 있다네.』

이러한 동욧거리가 되는 터이다.

맹공은 세 번 버리를 조아리며,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삼만명 군사는 명색뿐이옵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군사를 모두 모으더라도 만명이 될락말락 하옵고, 장안에 있던 군사 오천명 중에서 좀 나이도 젊고 똑똑한 놈들은 거지반 도망하고, 그리고 남은 것들 중에 걸음이나 걸을 만한 놈으로 천명을 골라 일길손(一吉飡) 현승이 진헌 친다 하여 데리고 가옵고 지금 남아 있는 군사라고는 눈이 어두워져서 제 옷의 이도 변변히 못 잡는 것들뿐이옵고 게다가 오랫동안 죽으로만 연명을 하오니 인제는 상감마나 능행길에 기를 메고 모시고 따라 갈 기운도 있는 것 같지 아니하오니, 그 군사를 데리고 궁예를 막을 길은 황소하오나 망연하온즉 신은 이 자리에서 병부령의 벼슬을 궐하에 도로 바치오니 다른 사람을 시키기와 궁예를 막게 하시옵소서 하고 아뢰오.』

하고 물러나가는 것을, 왕이 노기를 띄운 어성으로,

『게 있으라!』

하여 맹공을 불러 놓고,

『십년 병부령에 한 일이 무엇인고? 해마다 막대한 전곡(錢穀)을 들여 군사를 기른 뜻은 국가에 유사한 때에 쓰려 함이어든 제 옷의 이도 못 잡고 깃대 하나 들고 나설 기운도 없는 것들을 죽을 먹여 길러 온 것은 무슨 뜻인고? 짐이 들으니 병부령은 그 바통 속에 삼만명 군사를 길렀다더니 그 말이 옳은 말이로고. ———평할 때에 국록을 배불리 먹다가 이제 일이 잇은 물러간다 하니 가증한 일이다.』

하고 왕은 용안이 주홍을 부은 듯하고 발을 구르며,

『서불한!』

하고 부른다.

모든 신하들은 갑자기 무슨 벼락이 내리는고 하고 벌벌 떨었다.

『예.』

하는 준 흥의 대답이 나자마자 왕은,

『병부령 맹공을 당장에 내어 버히되 그 배를 갈라 삼만명 군사를 꺼내라! 누구든지 적신 맹공을 두호하는 자는 맹공과 같이 내어 버힐 것이요, 또 맹공과 같이 나라이 위태한 때에 편안히 물러가려 하는 자도 내버히어 태평한 때에 국록을 먹던 창자를 꺼내어 까마귀를 먹이게 하라!』

하고 추상 같은 어명을 내렸다.

금영 장군(禁營將軍) 양문(良文)이 이 명을 받자와 병부령 맹공의 사모와 관복을 벗기고 고하로 끌어 내리니 맹공이 무슨 말을 하려 하나, 입이 어룰하여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고 다만 입에 게거품을 물 따름이다. 계 하에 끌어 내린 뒤에는 대령하였던 군사들이 달려들어 붉은 오라로 맹공을 결박한다.

『곧 병부령 맹공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올리라!』

하고 성화같이 재촉한다.

서불한(舒弗邯) 이하로 문무 백관은 왕이 이처럼 엄한 명을 내릴 줄은 몰랐다. 그래서 언제 자기의 목을 베라는 영이 내릴까 하고 가슴을 두근거렸다.

이윽고 금영 장군 양문은 손수 피 흐르는 맹공의 머리를 담은 소반을 왕의 앞에 받들어 드렸다. 맹공의 감지못한 눈이 촛불 빛에 번쩍번쩍할 때에 사람들의 몸에서 소름이 끼치고 입에 신물이 돌았다.

왕은 한손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맹공의 머리를 쳐들어 좌우에 벌려 선신하들에게 보이며,

『너희는 천년 동안 대대로 국록을 먹고 살아 왔다. 이제 국가가 위태한 때를 당하여 목숨을 아껴서 한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설진대, 다 이와 같이 목을 도려 후세를 징계하리라. 이로부터 군국 대사를 내 몸소 행할 터이니 각 유사(有司)는 내일 안으로 궁예를 치는 대군을 발하도록 성화같이 차비하라. 짐이 몸소 출정할 터이니 모두 칼을 들고 나를 따르라.』

하고 왕은 맹공의 머리를 높이 들어,

『다들 이 역적의 머리를 보라.』

하고 신하들 앞으로 굴렸다.

맹공의 머리는 이 사람이 굴려, 다음 사람에게로 보내고 그 사람이 또 굴려 또 그 다음 사람에게로 보내고 이 모양으로 떼굴떼굴 굴려 마지막 사람에게 간 때에는 피도 거의 다 빠지고 허여멀끔하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피빠진 맹공의 머리는 그 이튿날 종로에 높이 달리고 왕이 하신 말씀을 그 곁에 대자로 써서 붙였다.

왕은 모든 사하들이 목숨을 버려서라도 궁예를 물리친다는 맹세를 듣고 오경이 친 뒤에야 침전으로 돌아 왔다.

침전에는 대야주의 미장부가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 같으면 들어서는 길로 자기를 안고 갖은 희롱을 다할 것이언마는 이때에 왕의 얼굴은 무섭게 엄숙하였다.

왕은 방 한구석에 웬 셈인지 모르고 눈이 멀뚱멀뚱하여 섰는 야주 미장부를 보고,

『칼 쓸 줄도 아나?』

하고 물었다.

미장부는 한걸음 왕의 곁으로 가까이 오며,

『칼 쓸 줄 모르고 어찌 대장부라 하리까.』

하고 의기 양양하였다.

왕은 다시,

『활 쏘기도 배웠나?』

한즉, 미장부는 더욱 의기 양양하여,

『멀리 당나라에는 모르거니와, 우리 신라에서는 활을 쏘아 나를 겨룰 자는 없사옵니다.』

하고 한편 어깨를 쳐든다. 그는 아마 무슨 높은 벼슬이나 얻어 할까 하고 맘이 솔깃하였다.

왕은 못 미더운 듯이 이윽히 미장부를 바라보더니 벽에 갈린 칼을 벗겨 미장부에게 주며,

『이 칼을 가지고 이 길로 가서 궁예의 머리를 가지고 오라. 그렇지 못하거든 이 칼로 네 머리를 베어 칼과 함께 돌려 보내라. 궁예의 머리를 보기 전에 나는 다시 남자와 자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미장부는 뜻밖의 말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리고 정신 없이 떨리는 두 손으로 왕이 주는 칼을 받아 들었다. 칼을 받아 드니 귀가 윙윙 울고 눈이 팽팽 내두르는 듯하였다. 「궁예를?……궁예를?」하고 미장부는 떨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하며 허리를 굽혀 왕께 절하고 병풍에 벗어 걸었던 옷을 벗겨 입고 왕이 주신 칼을 허리에 차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다.

미장부는 내어 보낸 뒤에 왕은 시녀도 다 물리고 혼자서안에 기대어 울었다.

진헌이 작폐를 하기로 궁예가 작폐를 하기로, 삼만의 군사가 있은 설마 어떠라고 여태껏 든든히 믿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밤 병부령의 말을 들으니 오늘 밤으로 궁예가 장안을 엄습한다 하더라도 막을 도리가 없을 것이요, 또 것으로는 번드르르한 문무 백관이란 것들도 큰일이 생기면 말 한마디 내지 못하는 양을 볼 때에 왕은 문득 무서운 짐승들이 득시글거리는 심심 산중에 혼자 있는 듯한 적막과 무서움을 깨달았다. 그 문무 백관들 중에 대부분은 왕이 특별히 생각하여 높은 벼슬을 준 사람들이다. 그것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았던 양을 생각하면 금시에 왕을 건드리는 자가 있어도 한 놈 목숨을 내놓고 대들 자는 없을 것 같다.

왕은 여자에게 특유한 반짝하는 직각(直覺)으로 나라와 자기의 처지가 어떻게 위태한 것을 깨닫고, 또 이것이다 자기의 지난날의 잘못인 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왕 된지 근 십년에 날로 한 일은 음탕한 일뿐이었다.

음탕한 일을 하기에 국고는 경갈하고 민심은 이산하였다. 하늘이 믿던 군사와 신하들도 다 믿을 수 없는 헛 값인 것을 생각할 때에 왕은 가슴을 치고 울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어머니가 미웠다. 왕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모든 유탕한 버릇을 배웠다. 옛날 책을 보면 미상불 음란한 자는 나라를 망한다는 말도 있었거니와, 설마 내야 그러랴 하고 왕은 스스로 속아 왔다.

그러나 결국 자기도 그 사람이다. 이튿날,

『궁예는 어진주(御珍州)를 무찌르고 아슬라(阿瑟羅)를 향하여 진군한다.

어진주 도독은 싸와 죽고 군사는 다 궁예에게 항복하였으며 삼월 삼질 안으로 서울을 엄습한다고 장담하니 곧 구원병을 보내라.』

하는 아슬라 장군의 장계(壯啓)가 들어 왔다.

왕은 이날 조회에 눈물을 흘리며 군신(君臣)을 향하여 이렇게 윤음(綸音)ㄹ 내리시었다 ————

『짐이 여자의 몸으로 보위(寶位)에 오른 지 우금 팔재에 덕이 엷고 운이 험하여 한 가지 다스림이 없고 백 가지 어지 어지러움이 있는지라. 이제서에 진헌이 있고 동에 궁예 있어 백성이 도탄에 괴로와하고 사직이 누란(累卵)과 같이 위태하였으니, 다 짐의 죄라 생각하며 두려움을 견디기 어렵도다. 이제 집이 돌아 봄이 있고 또 대아손 치원(致遠)의 충성된 간함을 들어, 앞으로 전에 하던 잘 못을 버리고 새로운 옳음을 밟아 국궁진췌하여 모든 장사를 새롭게 하려 하노니, 너희 백관 유사는 짐의 뜻을 범받아 힘쓰고 힘쓸지어다.』

왕은 이 말씀을 할 때에 목소리가 떨리며 눈물이 흘렀다. 서불한 준 흥도 눈물을 흘리고 다른 사람들도 몸에 소름이 끼침을 깨달았다.

왕은 이내 금영 장군 양문으로 병부령을 삼아 일국 병마를 총관케 하고 최 지원으로 대아손을 삼아 군국 대사에 참예하게 하였다. 그리고 병부령 양문을 명하여 즉일로 궁예를 치는 군사를 발하게 하였다.

양문은 어명을 받아 장안에 있는 군사를 모조리 수습하여 보았다. 그러나 활과 칼을 들고 전장에 나갈 만한 군사는 천명도 넘지 못하고, 그중에도 싸움에 나간다는 말을 듣고 슬몃슬몃 달아나는 자가 많았으며, 군기고(軍器庫)에 있던 활은 줄이 썩어지고 칼과 창은 녹이 슬고 군복은 썩고 좀이 먹었으며, 말은 먹지를 못하여 뼈만 남고 털세에서는 먼지가 일었다.

양문은 장안 방방 곡곡에 군사를 모집하는 방을 붙이게 하였으나, 그것을 보고 모이는 자는 모두 합하여 백여명에 불과하고 그것도 대개는 일하기를 싫어하는 무뢰배나 그렇지 아니하면 때묻는 몸에 누더기를 감은 거지들이었다.

이러하는 동안에 아슬라(阿瑟羅)에서는 궁예의 엄습함이 질풍과 같아서 지금 형편으로는 사오일을 견디기 어려움과 전하고 도망하여 오는 원들은 꼬리를 물고 서울로 들어왔다. 장안 백성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늙은이와 어린것들을 붙들고 갈 곳을 몰라 헤매고 방향없이 동서로 유리의 길을 떠났다. 잔사하던 백성들은 가게를 들이고 시제한 돈과 보물을 땅에 묻으며,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들도 뒷문으로 슬슬 식구들과 재물을 뽑아 돌렸다.

양문은 겨우 천명 군사를 만들어 좀 먹은 군복을 입히고 녹는 칼을 들려 일길손(一吉飡) 현승(玄昇)으로 장군을 삼아 아슬라로 보내었다.

오랫 동안 조련을 받지 못하여 발도 잘 안 맞는 군사들은 그래도 의기양양하여 복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서울을 떠났으며, 아무도 이것들이 궁예를 이기고 돌아 오리라고 믿지는 못하였다.

궁예가 자안을 향하고 몰아 들어 온다는 말을 듣고, 진헌의 군사도 맹렬히 싸움을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서울서는 궁예가 먼저 들어 오나 진헌이가 먼저 들어 오나 하고 근심스러운 고개를 동으로 서로 돌렸다.

검은 구름장이 서쪽에 떴어도 진헌의 군사가 들어 음이 아닌가, 음산한 바람이 동으로서 불어 와도 궁예의 군사가 몰아 옴이 아닌가 하여, 장안 백성들은 자다가 바스락 소리만 나도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였다. 종로에는 날마다 「백성들은 안심하라」하고 싸움에 이긴 듯한 말을 써서 붙이나 아무도 그것을 믿는 이는 없었다.

일길손 현승이 거느린 천명 군사가 아슬라성을 치는 날이었다. 아슬라 장군 충신(忠臣)은 죽기로써 궁예를 막았다. 처음에는 편지로써 궁예를 달래었으나 궁예가 웃고 듣지 아니하매, 한번 싸와 장우을 결단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성중에 있는 군사가 천명에 차지 못하니 이것을 가지고 궁예의 삼천 대군을 이길 가망이 없어 밤낮으로 서울서 구원병이 오기만 고대하고 갖은 꾀를 다 써서 궁예와 싸울 날이 하루 이틀 미루어 오다가 마침내 더 쓸 꾀가 없어 이날에 궁예와 대접선이 된 것이다.

충신은 성문을 굳이 닫고, 물 밀듯 사방으로 들어 오는 궁예의 군사를 막았으나 성중에 저축하였던 군량 ·마초도 다하고, 또 하나 둘씩 거꾸러지는 군사가 저녁때에 반 너머 죽어 버리고, 화살조차 남은 것이 얼마 되지 아니하니, 아무리 하여도 해 지기 전에 성중은 전멸이 되고 말 것이다.

충신은 마침 장졸에게 명하여 만일 궁예의 군사가 성문을 깨뜨리고 들어오고 우리 군사가 막을 힘이 없다고 보거든 곧 성중에 불을 놓으라 하였다.

장졸들도 싸움에 이기지 못할 줄을 알았으나, 충신의 의기에 감격하여 죽거나 살거나 충신과 같이 하기를 맹세하고 마지막 화살이 다하도록 싸왔다.

궁예는 북원을 떠난 뒤로 이십여 차를 싸왔으되, 아슬라성과 같이 무섭게 싸우는 대적을 보지 못하였다.

『신랑에도 아직 사람이 있구나, 그것은 충신이로구나.』

하고 궁예는 홀로 한탄하였다. 그리고 궁예는 여러 번 항복을 권하는 글을 보내었으나 그럴 때마다 받는 회답은 한결같이.

『차라리 이몸이 죽어 살을 개에게 먹일지언정, 목숨이 살아 나라를 거스리는 도둑의 신하가 되지 안하리라. 금수도 이 나라의 우로를 받은 은혜를 알거든 너는 사람이 되어 감히 불측한 맘을 품느냐? 곧 목을 늘여 항복하라. 혹 네 목숨을 살리리라.』

하는 것이었다.

석양이 되어 궁예는 더 항복을 권하는 글을 보내었다. 그때에 간단히,

『개여, 내 죽은 몸의 살을 먹을지어다. 하늘이 반드시 너를 벌하시리라.』

하여 죽기까지 싸울 뜻을 보였다.

궁예는 전군을 몰아 아슬라성을 엄살할 제 양진에서 쏘는 활과 던지는 돌이 하늘을 가리었다 그러나 . 얼마 아니하여 충신의 진중에서 나오는 살은 점점 줄었다. 더욱 주는 틈을 타서 궁예의 군사는 섬에 모래를 넣어 올려 쌓고 사다리를 놓고 성으로 기어 올랐다. 성안에서는 끓인 물과 고추가루를 던지어 저항하였으나 어찌하지 못하고 궁예의 군사는 마치 방죽 터진 데로 들여 미는 물 모양으로 성중으로 밀어 들었다.

마침내 먼저 들어 간 궁예의 손으로 성문이 열리고 궁예의 군사는 소리를 지르며 성안으로 들어 갔다. 궁예가 말을 몰아 성문으로 들어 갈 때에 성중에서 불이 일어나 순식간에 수없는 불기두이 하늘을 태웠다.

이 때에 죽다가 남은 충신의 장졸들은 성중에 불을 놓고 나서 장군 영문에 모이었다. 거의 한사람도 성한 사람이 없고 대개는 한두 군데 살을 맞아 피가 흘렀다. 충신은 남쪽으로 서울을 향하여 세 번 절하고 칼을 빼어 그 부인에게 주었다. 부인은 칼을 받아 곁에 앉은 두 아이를 죽이고 그 칼로 자기의 몸을 찌르고 엎더지었다. 충신은 아내와 아들의 피 묻은 칼을 들고 일어나 좌우에 있는 장졸을 보고,

『그대들은 잘 싸왔다. 나는 죽어도 황천에서 선인을 만날 면목이 있다.

그러나 이제 승부는 결정되었으니, 그대들은 각기 좋은 길을 잡으라. 나는 마지막으로 궁예와 싸와 성을 베개 삼아 죽으리라.』

하고 말에 올랐다. 다른 장졸들도 크게 통곡하고 칼을 들고 충신의 뒤를 따랐다.

현승은 아슬라성을 삼리나 두고 충신의 사자를 만났다. 그는 충신이 마지막으로 왕께 올리는 장계를 가지고 혼자 말을 달려 서울로 가는 길이다. 애초에 둘이 떠났다가 하나는 서문 밖에서 궁예의 군사의 흐르는 살에 맞아 죽고, 자기 혼자만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여 오는 길이라 하였다.

『인제는 거의 다 죽었겠소. 내가 빠지어 나올 때에 살아 남은 군사가 백명도 못되었으니 인제는 다 죽었겠소. 서문까지 궁예의 군사에게 빼앗기기 전에 가라 하시어 우리 둘이 빠지어 왔으나, 서문 밖으로 내달으니 벌써 궁예의 군사가 성 밑으로 돌아 서문으로 오는 것을 보았소.

인제는 다 죽었겠소. 만일 성중에서 불길이 일어나거든 다 죽은 줄 아시오.』

하고, 말이 마치지 아니하여 석양에 비낀 아슬라성 한 굽이를 한번 돌아보고 말을 채치어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그 사자가 얼마를 가지 아니하여 멀리 아슬라성에서는 검은 연기가 올랐다 현승은 주먹으로 . 가슴을 치고 전군을 몰아 아슬라성을 향하고 달려간다.

해념잇고개라는 조그마한 고개에 올라 서니 바로 아슬라성이 눈앞에 보이는데 성 밑에 개미같이 오물오물하는 것은 분명히 궁예의 군사다.

풀신풀신 오르는 연기는 하나씩 둘씩 점점 늘어 수없는 연기 기둥이 하늘에 올라 이른 봄 동풍에 뭉게뭉게 서쪽으로 밀려 현승의 군사를 향하고 왔다.

점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연기는 더욱 많아지고 집 타는 누릿한 냄새까지 코에 들어 오며 종이나 헝겊 탄 검은 재가 펄펄 날려 현승의 군중에 떨어지었다.

충신의 장계를 받은 조정은 물 끓듯하였다. 아슬라성은 이미 궁예의 손에 들어 가면, 서울의 명맥은 조석에 달린 것이다. 아슬라와 서울 사이에 두 고을이 있으니 거기는 군사도 없고 성도 없다. 궁예의 군사는 무인지경 같이 스치어 들어 올 것이다.

조정에서는 여러 가지 의논이 생겼다. 혹은 궁예에게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고, 진헌의 힘을 빌어 궁예를 막게 하자 하였다. 대아손 효종은 진헌의 힘을 빌자는 패의 두목이 되고, 대아손 치원은 궁예의 원하는 바를 물어 후히 주고 일시 화친을 청하여 먼 곳으로 물러가게 한 후에 서서히 힘을 모아 나라를 평정할 도리를 하자 함이다. 이 두 가지 의논으로 싸우는 동안에 헌승의 상계가 올라 왔다.

『아슬라를 회복하려고 한번 싸왔으나 중과 부적(衆寡不敵)하와, 군사를 반이나 잃고 물러와 소을라(小乙羅)를 지키나이다.』

하는 것이었다.

왕은 황망하여 치원의 말을 들어 궁예와 화친을 청하기를 명하였다.

벼슬이나 땅이나 궁예의 소청대로 주고 궁예를 내성(柰城) 이북으로 물러가게만 하라고 하였다.

아제 문제 되는 것은 궁예에게 사자로 갈 사람이다. 진헌에게 사자로 갔던 사람들이 모두 진헌에게 잡혀 죽음을 보고, 아무도 궁예에게서 사자로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날더러 가라면 어찌하나 하고 가슴을 두군거렸다.

이때에 서불한 준 흥이,

『듣사온즉, 궁예는 본시 사문(沙門)이라 하오니 대구화상(大矩和尙)을 보내심이 마땅할까 하옵니다. 화상은 덕이 높고 언변이 좋으니 반드시 궁예를 열복케 할까 하옵니다.』

하였다. 대구 화상은 왕이 즉위하신 처음부터 왕의 노랫동무가 되어 세도하던 중이다.

왕은 준 흥의 말을 옳게 여겨 화상을 돌아 보며 그 뜻을 물었다.

화상은 잠깐 낯빛이 변하였으나 얼른 중의 평심서기를 꾸미고, 듣사온 즉 궁예는 『 태백산 세달사 중이라 하오니 사람을 세 달사에 보내시와 궁예의 스님되는 이를 부르시와 보내심이 가장 마땅한가 하옵니다.』

하고 자기의 몸을 뺀다.

왕은 일변 현승에게 명하여 궁예와 싸우지 말고 오직 재주껏 궁예를 달래어 오륙일만 궁예를 아슬라에 머물게 하라 하고 일변 잘 달리는 말을 골라 세달사에 사람을 보내어 궁예의 스님 되는 중을 불러 오게 하였다.

이때에 허담(虛潭) 화상은 소허와 선종을 다 잃어 버리고 병든 늙은 몸이 의지할 곳이 없어 시중 여러 젊은 중들에게 몰려 가며 시중을 받고 어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룬 하담 회상뿐 아니라 사중에 있는 중들도 소허가 진헌이 되고 선종이 궁예가 되었으리라는 꿈도 못 꾸고 있던 터이라 서울서 온 왕의 사자가,

『이 절에 궁예라는 중이 있었느냐?』

하고 물을 때에는, 모두 눈이 둥글해서 대답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궁예가 애꾸 장군이라는 말은 들었으나 천하에 애꾸가 한 사람뿐이 아니려든 애꾸 선종이가 궁예 신장군이라는 믿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사중에 연전에 선종이라 부르는 애꾸 중이 있기는 하였으나 궁예는 본산에 있은 일이 없사옵니다.』

하고 노승은 사신에 아뢰었다.

사신은,

『시각이 급한 때라는 일각도 지체할 수 없으니, 그 선종인가 하는 중의 스님에게로 인도하라.』

하였다.

허담 화상은 왕의 사신이 임하였다는 말을 듣고 놀래어 젊은 중들의 부축을 받어 자리에 일어나 사신을 맞았다.

사신은 공손한 말로,

『대사가 선종의 스님이요?』

하고 물었다.

허담 화상은 황송하여 여러 번 합창하며,

『예, 소승이 상좌 두놈을 두어, 한 놈은 선종이라 하옵고 한 놈은 소허라 하옵더니 두 놈이, 다 늙고 병든 소승을 버리고 연전에 달아났사옵고 그런 , 후로는 어디로 가서 어찌되었사온지 이내 소식이 없사옵니다. 그놈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사온지 알 수 없사오나, 한 놈은 아주 흉물스럽소 간사한 놈이옵고, 한 놈은 정직하오나 우락부락하옵기로 무슨 큰일이야 하오리까? 아마 사람을 죽였는지 알 수 없사옵니다.』

하고 두 놈을 생각하며 심히 쾌씸한 듯이 화상은 낯을 찌푸리고 입맛을 다신다.

사신은 더 길게 말하지 아니하고 곧 사중에 명하여 탈것을 장만하게 하고 왕이 화상에게 보내는 대승정(大僧正)의 의복 일습을 영문도 모르는 허담 화상에게 입혀 성화같이 서울로 데리고 올라 왔다.

사중에서도 영문도 모르고, 허담 화상도 영문을 몰랐다. 그러나 왕이 허담 화상에게 대승정의 법의 일습을 내리신 것을 보니, 불길한 일은 아니라고 안심하고 사중이 모두 따라 나와 동구 바까지 허담 화상을 전송하였다.

허담은 서울에 오는 길로 왕께 뵈옵고,

『들으니 궁예는 본시 대사의 상좌라 하오니, 이제 궁예가 군사를 몰아 서울을 피박하니 대사가 한번 가서 구예와 화친을 하도록 힘을 써 주오.』

하는 왕의 앞인 줄도 모르고 소리를 질렀다. 화상의 눈에는, 그어는 해 늦은 가을 세달사 동구에서 도토리 주워 먹던 흉물스러운 애꾸 아이놈이 보이고,

『이놈 용덕 왕자로구나.』

하고 자기가 물을 때에,

『아니요, 애꾸가 나 하나 뿐인가요?』

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왕은 허담 화상으로 대승정 국사(大僧正國師)를 봉하여 정사(正使)를 삼고, 대아손 치원으로 부사를 삼아, 즉일로 아슬라를 향하고 떠나게 하였다.

허담 국사는 누운 대로 가마에 담겨 「이놈 선종이 이놈이」하고 연해 중얼거리며 찬란한 은사(恩賜)의 법의를 연해 만지고 빙그레 웃었다.

아슬라성에 들어 온 궁예는 심히 맘에 흡족하였다. 비록 어제 불에 많은 집이 타 버렸으나 성내에는 고루 거작이 즐비하고 거상 대과 동문에서 남문과 서문에 닿았으며, 장군 마을을 세달사 대법원당보다도 웅장한 듯하였다. 지금까지 여러 고을을 지내 왔으나 이처럼 웅장한 고을은 처음 보았다. 오늘부터 이 모든 것의 주인은 내다 할때에 궁예는 스스로 웃지 아니할 수 없었다.

성에 든 지 이튿날 궁예는 옥문을 열어 모든 죄수를 내아 놓고 일변 장군 충신과 같이 어제 싸움에 죽은 장졸들을 후히 장례하였다. 그날 싸운 양군의 죽은 자가 천여 명이요, 상한 자 천여 명이요, 불탄 집이 이천호나 되었다. 만일 해지게 우연히 큰비가 오지 아니하였던들 아슬라성은 온통 재가 될 뻔하였다.

장졸의 장례가 끝난 뒤에 궁예는 크게 잔치를 베풀어 일변 몸소 주이 되어 싸와 죽은 장졸을 위하여 재를 울리고, 일변 모든 군사들을 한바탕 먹이고 또 성중 주민들을 술을 먹었다.

성중 백성들은 죽은 충신을 사모하지 아니함이 아니나, 또한 새 주인을 기쁘게 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 모여 오던 백성들은 모두 왕께나 뵈옵는 사람들 모양으로 가정 좋은 옷을 입고 가각 손에 예물을 들고 삼문에서부터 허리를 굽히고 장군 마을에 들어 왔다. 그중에 나이 많고 지위 있는 몇 사람은 계상에 올라 궁예에게 승전한치하를 아뢰었다. 그러할 때마다 궁예는 가장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백성들이 자기를 무엇이라고 부를 줄을 모르고 민만하여 하는 것을 보고, 궁예는 대장군(大將軍)이라고 자칭하던 옷을 좀더 찬란하게 고치어 대장군의 군복을 삼았다. 그리고 부하 장졸 중에서 사람을 골라 군중과 성중을 다스리는 여러 벼슬을 내리고 각각 직분을 맡아 정사를 하게 하며, 성 뒷산에 있는 솔밭을 백성에게 주어 성화같이 불탄 집을 다시 축조하도록 영을 내렸다.

백성들은 점점 궁예의 덕을 칭송하게 되어 혹은 길거리에 선정비를 세우고, 혹은 성문에 찬양하는 시와 노래를 써 붙이며, 혹은 글을 지어 궁예에게 바치었다. 그중에 어떤 선비는 궁예의 덕을 찬송하여 「왕덕(王德)」이 있다고 까지 하였다. 또 아슬라성 원근에 있는 모든 절에서는 일제히 궁예를 위하여 재를 베풀고 그 복을 빌었다.

이 모든 것이 다 궁예를 흡족하게 하였다.

말을 타고 성내를 순시할 때에 골목 골목 선정비와 송덕표를 보는 것이나, 자기가 지나갈 때에 백성들이 다투어 나와서 합창하고 자기를 우러러 보는 것이나, 어는 것이 없었다. 그중에도 자기를 「왕」의 덕이 있다고 한 것이 아무리 하여도 잊히지 아니하였다.

이 모양으로 오랫 동안 싸운 군사를 쉬게 하고 일변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하며, 서울을 들이칠 일과 어머니의 원수를 결박하여 발 아래에 꿇리고 자기의 손으로 그 목을 베고 간을 내아 어머니의 무덤 앞에 제사 드릴 것을 생각하고, 혹은 흡족하여 웃고, 혹은 이를 갈고 있을 때에 문 지키던 군사가 왕의 사신이 이르렀음을 아뢰었다.

『왕의 사신?』

하고 궁예도 놀래었다. 그러면 왕도 벌써 자기의 위엄에 눌려 화친하는 사신을 보낸 것인가 할 때에 궁예는 더욱 자기의 힘이 위대한 것을 깨달았다.

『몇 사람이나……왔더냐?』

『한 사십명 되옵고 구중에는 자주 옷을 입은 이와 붉은 옷을 입은 이 가열은 넘사오며, 화친을 청하러 온 사신이라고 말하옵니다.』

하고 문 지키던 군사가 말한다.

궁예는 이윽히 생각하다가,

『흥, 화친! 늙은 여우, 젊은 여우가 목을 늘여 내 칼을 받는 것이 화친이다.』

하고, 궁예는 분함을 이기지 못한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들라고 일러라.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나 보자.』

하고 또 한번 픽 웃었다.

사신 일행은 궁예의 군사가 인도하는 관객에 들었었다. 그날은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밝은 날에 궁예와 만나기로 하였다.

일행은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궁예에게 대하여 할 일을 의논하였다.

『대왕의 직사가 오는데도 성문 밖에 나와 맞지도 아니하니 그런 괘씸한 일 있소?』

하고 분개하는 이도 있었으나, 부사 최 치원은 이런 위급한 경우에 그런 것을 탄할 처지가 아니란 말로 쉬쉬하고 눌러 버렸다.

치원은 설마 궁예가 그날 밤에 몸소는 못 오다리도 사람이라도 보내어 문안을 하리라 하였고, 적어도 이튿날 아침에는 궁예가 몸소 객관에 나와 맞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밥이 끝나고 해가 한나절이 되어도 궁예가 오기는커녕 궁예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고, 객관을 지키는 군사들이 창과 칼을 든 채로 객관에 들어 와 무엄하게 기웃거렸다.

사신 일행은 모두 울분함을 마지 아니하였다. 진헌 모양으로 당정에 죽여 버리지는 아니한다 하더라도, 불도 잘때 지 아니한 힝덩그러한 방에 일행을 가둬 놓고는 금침조차 때묻은 것을 주고 조석도 보행 객주의 밥상과 다름이 없을 뿐더러, 술 한잔도 대접함이 없고 잘왔느냐는 문안 한 마디도 없는 것을, 진헌의 행세보다도 더 무례하다고 말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도 귀엣말 뿐이요, 한참 얼굴에 핏대를 돋치고 말을 하다가도 밖에서 파수하는 군사나, 순도는 군사의 발자취만 들리면 다들 쉬쉬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법이 있나?』

『응, 오랑캐 놈 같으니.』

『모가지를 자를 놈 같으니.』

하고 사신 일행은 이를 갈고 궁예를 꾸짖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이 궁예의 처분만 내리기를 기다리다가 해가 벌써 낮이 기울었다.

사람들은 다만 허담 화상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화상도 금빛이 찬란한 법의를 입은 채로 세월 없이 들어 누워 눈을 감고 염주를 세어 가며 잠꼬대 모양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찾을 뿐이요, 무슨 도리를 생각하는 모양도 없었다.

『국사 스님 해가 낮이 기울었읍니다.』

하고 사신 중에 누가 말하면, 허담 화상은 번히 눈을 뜨고,

『응, 아직 선종(善宗)이놈이 아니 왔나? 고이한 놈 같으니, 평소에도 밥솥에 불을 때다가도 제 맘만 나면 토끼 사냥을 가는 놈이더니.』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슨 소린지 알지도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고는 다시 눈을 감고 염주를 세며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

낮이 기울어도 궁예에게서는 소식이 없고 지키는 군사에게 재촉하는 말을 하여도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점심조차 아니 주니, 일행은 추운 중에도 시장함을 금치 못하여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더러는 때묻은 이불로 몸을 싸고 시장한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떠들지도 못하고 어찌되는 셈을 몰라 몸만 좌우로 흔들고 앉았다.

『국사 스님이 배고픈데 점심도 아니 주니 이런 법이 있읍니까?』

하고 누가 불평을 하면, 허담 화상도 그제야 시장한 것을 깨달은 듯이 침을 삼키며,

『허, 선종이놈이 토끼 사냥을 가서는 가끔 밥을 굼기더니.』

하고는 또 여전히 태연 무사로 염불만 한다.

팔팔 뛰고 화를 내던 사신 일행도 허담 화상이 태연한 것을 보고는 적이 맘이 가라앉아 화상의 흉내를 내어 염주 대신 손가락으로 꼽아 가며 입속으로 「나무 나무 나무 나무」하고 염불을 외운다. 이렇게 되면 점점 무시무시한 맘이 생겨 사람들은 목숨줄이 금시에 끊어진 연줄 모양으로 손에서 빠져 날아갈 것만 같았다.

『글쎄, 이게 웬일이야?』

『이런 법도 있나?』

하고, 사람들은 점점 마당 한복판으로 내려 가는 해 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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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